마지막 베타
내가 하고 있지 않는 것
나는 너를 알아가는 일을 포기했다.
네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어떠한 도덕적 평가를 하지 않는다.
네가 갖고 있는 의견을 토대로 너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는다.
네 글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적도 없고, 글을 쓰면서 너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전달하려고 애쓴적도 없다.
너와 소통하려는 노력은 결코 포기한 적 없다.
‘베타’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된 것은 너의 글에서 언급한 일명 ‘베타’를 통해 내가 네 글 안에서 실제로 보고 느꼈던 것들을 최대한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위함이었다.
즉, 필터없이 네 의견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지, 이것이 너에 대한 공격의도나 부정적인 감정의 표출로 읽히길 바란 것은 나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위 관점에서) 베타1과 베타2는 ‘그 채널’ 컨텐츠에 대한 너의 비평에 대해 쓴 것이지, 거기에 대해 해석을 한 너 개인에 대한 선전포고문이 아니었다.
애초에 너의 글은 단순한 채널 추천도 아니었다. ‘그 채널’ 에 대한 비평을 소재로 한 너가 구축한 인간관의 서술이 그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너 스스로 언급했듯이 너만의 특정 관점으로 해당 채널을 바라보고 있고, 그건 조롱이 아니라, 연민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내가 베타1 글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네 해석과 해당 채널 운영자가 의도한 핵심주제가 같다고 동의할 수 없고, 그 채널과 그런 컨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불행 포르노’ 를 소비하는 방식(즉, 성공을 소비하는 주류언론의 방식)과 근본적으로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네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힌 것이다.
즉, 네 비평과 해석에 대한 내 관점을 전달 한 것이지. 너 자신이 ‘그 채널’ 이나 ‘그런 컨텐츠를 소비하고 그들의 삶을 조롱하는 사람’ 과 동일하다고 지칭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너 개인과 네 해석이 동일하다고 네 스스로가 생각한다면, 그건 널 알아가지 않고 해석하지 않는 영역에 속해지기 때문에 그에 대해 나는 뭔가를 쓰는 것(소통하는 것)을 멈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내’가 널 괴물로 보고 있거나, 혹은 ‘내’가 너한테 괴물로 보일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는 건, 내가 ‘베타’ 시리즈를 통해 전달하고 싶어했던 솔직함에 대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진실은 나는 너를 괴물로 본 적도 없고, ‘그 채널’ 과 관련된 어떠한 부정적인 개념도 너 개인과 결부 시킨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네 의견과 해석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내 관점을 피력한 것이다.
즉, 한 개인인 너와 ‘너’가 ‘그 채널’에 대해 쓴 해석은 적어도 내 심중에서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심지어 네가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나야 알 수 없지만) 네 해석에 대한 내 부정적인 의견을 너 개인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결코 없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나는 너를 알아가는 일을 포기했다는 언급에 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을 포기한 적이 없다. 소통은 어렵고 힘든 일이며, 소통 되어야 하는 것이 디폴트가 아니라고 언급했을 따름이다.즉, 너 라는 개인을 알아가고자 함(=그를 평가하고 해석하는것)과 너 라는 개인과 소통은 내게 있어서 완전히 별개로 분리된 것이다.
이것에 대해 사전에 우리가 합의하거나 언급한 바가 없으니 이것에 대해 오해가 생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베타’ 시리즈를 통해 전달하고 싶어했던 솔직함에 대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단, 미러링 같은 표현은 쓸 필요가 없다. 내 관점에서 그건 협박이다.
내가 널 공격하고 상처줄 수 있지만, 그러지 않겠다는 말은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더라도 소통에 엿을 먹이는 행동이다.
야만인의 비유를 꺼낸 것은 깔끔하고 예쁜 소통은 디폴트가 아니며, 신뢰처럼 한번 잃고나면 다시 쌓기 어려운 것이라는 의미에서 언급한 것이다.
즉, 포켓몬처럼 상대방을 이해하고 오해를 푸는 편리한 것은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그 과정을 띄엄띄엄 보지 말라는 의미다.
심지어 아예 소통을 위해 태어난 뉴타입조차도 작품 속에서 완벽한 이해에 도달하는 것에 실패하고, 오해와 갈등을 겪으며 소통의 어려움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어떠한 손님도 초대받은 식사자리에서 내가 널 도끼로 조질 수 있지만, 오늘은 굳이 그러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는 병신은 없을 것이다.
소통의 핵심은 수용과 거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떠한 이유에 있어서든 소통을 멈추려 들지 않는 것.
오해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 상대방의 의도가 정말 상대방이 의도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소통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급발진은 그 의도를 확인받은 이후에도 충분니까.
길지 않은 우리의 삶에 지켜야 할 소중한 신념이 있다면 그런것 아닐까 싶다.
바다의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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