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타2
“내가 너에게 어떤 불쾌감을 주려 부러 무엇을 한 것은 아니다.”
나는 글에서 불쾌감을 느낀 적이 없다. 따라서, 내게 감정적인 반응 프레임을 씌워줄 필요는 없다.
“대중매체는 유독 성공담에 집착하고, 그 성공을 포장하는 일에 오히려 거짓된 포장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런 위선보다 현실적인 실패담과 모험담,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그들의 삶에도 의지와 의미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쪽에 가깝다.”
대중매체의 성공팔이가 위선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 채널’이 ‘저지능, 저학력에 가족에게도 버려진 여자’, ‘중졸 무직 패배자’, ‘비정규직 패배자’, ‘음모론자’ 등을 다루는 방식에도 조롱과 위선이 가득 차 있지 않은가?
바로 그 ‘위선’이 언급한 선민의식이나, 도파민에 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는 결국 ‘성공 포르노’와 같은 ‘불행 포르노’라고 생각한다.
네가 ‘그들’의 삶에도 의지와 의미가 있다는 믿는다는 사실이 ‘그들’의 불행을 소비하는 것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와 석가가 어려운 자를 긍휼히 여긴 것도 보기에 따라 페티쉬처럼 보일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스쳐간다.”
사람들이 누군가의 의도에 대해 오해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런 일은 항상 일어난다.
석가모니께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셨다.
“어떤 사람이 그대를 꾸짖고 욕설을 퍼붓는다. 가령 상대가 보석을 가지고 와서 그대에게 주었는데, 그대가 보석을 받지 않는다면 그 보석은 당연히 상대방의 것이다. 마치 그런 것처럼 상대방이 그대를 꾸짖고 욕하지만 그대가 꾸짖음과 욕설을 받지 않는다면, 욕설과 비방은 그대의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것이다.”스스로의 의도에 대해 변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맞으면 맞다. 아니라면 아니다라고 얘기하면 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석가모니의 긍휼은 행위를 낳았다. 예수께서는 가장 천한자들.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의 짐진자들의 병을 고치셨고, 석가모니께선 중생의 깨달음을 돕기위해 45년간 표류하며 불법을 설교하셨다.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마태 11:19)
구조적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의식전환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의식을 통해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나’ 에 대한 것인지 ‘그들’에 대한 것인지는 생각해보아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만(慢)이 말하는 것 또한 그러한 것의 궤에 있을 것이다. 잘못 보는 것에 대한 경계. 내가 아는 정보로 타인을 판단내리고 비판하는 것.”
석가모니께서 설법하신 만(慢)은 비교하는 마음이다. 즉, 내가 낫다, 같다, 못하다는 세 가지 인데, 비교를 통해 내 자아를 세움을 경계하는 것이다.
타인을 판단 내리고 비판하는 것과는 다르다.
석가모니께서는 다음과 같은 계송을 주셨다.
“전투용 코끼리에게 화살을 쏘아대듯이/ 자제되지 않은 사람들은 말로 사람의 마음을 찢어놓네./ 그에게 퍼부어진 거친 말을 듣고서도/ 진실한 비구는 증오하지 않고 그 말을 참아야 하리.” 〈불성흥기행경〉 상권
“음뱃은 특유의 음파로 서로의 마음과 주위 상황을 감지하는 포켓몬으로, '말이나 외형이 아닌 내면의 소리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오해를 푸는 소통'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석가모니께서는 소통도 조건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설법하셨다.
사실이어야 한다.
진실해야 한다.
듣는 이에게 이로워야 한다
상대가 좋아해야 한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해야 한다
때에 맞아야 한다.
핵심은 ‘때’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이고 유익하고, 상대에게 이로운 말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듣기 싫어하는 말이라면, 상대가 그것을 들을 때를 기다려야 한다.
문명화 된 인간은 소통과 연결을 디폴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문명이 가져다 준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기원전이나 문명화된 지금이나 소통은 엄청나게 위험하고 어려운 것이다.
Civilized men are more discourteous than savages because they know they can be impolite without having their skulls split, as a general thing.
문명인들은 대체로 야만인보다 예의가 없다. 무례하게 굴어도 그들의 두개골이 두동강 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 코끼리 탑(The Tower of the Elephant, 1933)

오히려 우리가 상대방을 쉽게 조롱하고 선을 넘나드는 짓을 하는 것은 문명화 되었기 때문이라는 이 서사를 나는 굉장히 좋아한다.
바다의 쥐!
댓글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